용도를 정해 맡긴 돈을 함부로 쓰면 — 횡령이 되는 경계
돈 문제로 형사 고소까지 가는 상담에서 가장 자주 부딪히는 갈림길이 있습니다. "빌려준 돈을 안 갚는 것"과 "맡긴 돈을 빼돌린 것"의 차이입니다. 앞은 민사상 채무불이행이지만, 뒤는 형사상 횡령이 될 수 있습니다. 둘을 가르는 핵심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 그 돈에 '용도'가 정해져 있었는가입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그 경계가 어디까지 미치는지를 한 단계 더 분명히 했습니다.
어떤 사건이었나
피고인은 피해 회사로부터 부동산 경매의 입찰보증금을 납부하는 용도로만 쓰기로 한정하여 돈을 빌렸습니다. 피고인은 실제로 그 돈을 법원에 입찰보증금으로 납부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정해진 용도대로 쓴 것입니다.
그런데 이후 경매신청이 취하되면서, 법원에 냈던 입찰보증금이 피고인에게 다시 반환되었습니다. 피고인은 돌려받은 그 돈을 피해 회사에 돌려주거나 약속된 용도로 다시 쓰지 않고 자신을 위해 임의로 소비했습니다. 검찰은 이를 횡령으로 기소했습니다.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여 횡령죄 성립을 인정한 판단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논리의 뼈대는 세 가지입니다.
1. 용도를 정해 맡긴 금전은 그 용도에 쓸 때까지 '맡긴 사람의 것'이다
대법원은 목적과 용도를 정하여 위탁받은 금전은 정해진 목적과 용도에 사용될 때까지 그 소유권이 위탁자(맡긴 사람)에게 유보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그 돈을 받아 보관하는 사람이 이를 임의로 소비하면 횡령죄가 성립합니다. 돈이 일단 자기 계좌나 손에 들어왔다는 사실만으로 '내 돈'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2. 한 번 용도에 썼다가 돌려받은 돈도 여전히 용도에 묶여 있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이 여기입니다. 피고인은 빌린 돈을 일단 정해진 용도(입찰보증금 납부)에 사용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뒤 경매 취하로 돌려받은 돈은 자유롭게 써도 되는 '자기 돈'이 된 것일까요? 대법원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그 돈은 여전히 당초 정해진 용도에 구속된 채 위탁자의 소유로 유보되어 있으므로, 이를 임의로 소비한 것은 횡령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3. 위임 사무로 제3자에게서 받은 돈은 위임자에게 귀속된다
대법원은 횡령죄의 주체인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인지를 위탁관계의 실질로 판단하면서, 금전수수를 수반하는 사무처리를 위임받은 사람이 위임자를 위하여 제3자로부터 받은 금전은 위임자에게 귀속된다는 법리를 확인했습니다. 법원으로부터 반환받은 보증금 역시 피고인 개인의 것이 아니라 위탁관계에 묶인 '타인의 재물'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실무에서 무엇을 의미하나
돈을 맡기거나 빌려주는 쪽에서 보면, '용도'를 명확히 정해 두는 것이 단순한 약속을 넘어 형사적 보호막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용도를 특정해 건넨 돈이 다른 곳에 쓰이면, 단순히 "돈을 못 받았다"가 아니라 횡령이라는 형사 문제로 다툴 여지가 생깁니다. 차용증·이체 메모·메시지 등에 용도를 남겨 두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반대로 돈을 받아 쓰는 쪽에서는 경고로 읽어야 합니다. "어차피 내 계좌에 들어온 돈", "한 번 약속대로 썼으니 나머지는 내 마음"이라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용도가 정해진 돈은 그 용도가 끝날 때까지 내 돈이 아니며, 중간에 형태가 바뀌거나 잠시 돌아 나왔더라도 그 구속은 따라다닐 수 있습니다.
다만 모든 금전 분쟁이 횡령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용도나 목적을 정하지 않은 단순한 대여금은 빌린 사람의 소유가 되므로, 이를 갚지 않거나 다른 곳에 쓰더라도 횡령이 아니라 채무불이행의 문제로 남습니다. 결국 '용도 제한이 있었는가', '위탁관계가 있었는가', '어떤 경위로 소비했는가'라는 사실관계가 형사와 민사의 갈림을 결정합니다.
자주 받는 질문
빌린 돈을 다른 데 쓰면 무조건 횡령인가요?
아닙니다. 용도나 목적을 정하지 않은 단순한 대여금은 빌린 사람의 소유가 되므로, 이를 다른 데 쓰더라도 횡령이 아니라 빌린 돈을 갚지 않는 채무불이행의 문제입니다. 다만 '특정 용도'를 정해 맡기거나 빌려준 금전은 그 용도에 사용될 때까지 소유권이 맡긴 사람에게 유보되어, 받은 사람이 이를 임의로 소비하면 횡령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대법원 2025도16015).
정해진 용도에 한 번 썼다가 돌려받은 돈은 마음대로 써도 되나요?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부동산 경매 입찰보증금 용도로만 빌린 돈을 보증금으로 납부했다가 경매신청 취하로 돌려받은 경우에도 그 돈은 여전히 정해진 용도에 구속되어 맡긴 사람의 소유로 유보된 상태라고 보아, 이를 임의로 소비한 것을 횡령으로 판단했습니다. 한 번 용도에 사용했다는 사정만으로 용도 제한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는 어떻게 판단하나요?
위탁관계에 따라 타인의 재물을 점유·보관하고 있는지를 실질적으로 봅니다. 특히 금전수수를 수반하는 사무처리를 위임받은 사람이 위임자를 위하여 제3자로부터 받은 금전은 위임자에게 귀속되므로, 이를 보관하는 사람은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데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돈의 성격(용도가 정해져 있었는지), 위탁관계의 내용, 소비하게 된 경위가 결론을 가릅니다. 용도 제한이 없었다거나 정산·반환할 의사와 능력이 있었다는 사정 등은 중요한 방어 요소가 됩니다. 계좌 이체 내역·차용 경위·대화 기록 등 자금 흐름 자료를 정리하여 초기에 검토받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맡긴 돈, 빌려준 돈 — 횡령과 채무불이행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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